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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6,500km를 자전거로 달렸던 이유
작성자 메이크어위시 등록일 2019-09-20 11:44:47 조회수 161

 

검게 그을린 손등, 날렵해진 얼굴 외형적인 변화만큼 이들의 분위기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5월 만남 때는 활활 타오르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꽃같던 청년들은 74일이라는 고된 시간을 통해 그 온기를 고스란히 담은 단단한 돌이 되었습니다. 난치병 아동을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까지 6,500km를 자전거로 횡단한 김형석, 신정훈, 여민철 군을 다시 만났습니다.

 

  

 


Q.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김형석(이하 김) :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미국 횡단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셨거든요. 개강 전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합니다.

신정훈(이하 신) : 강원도 인제에서 레프팅 가이드 일을 하고 있어요. 귀국하고 이틀 만에 일을 시작했더니 살이 더 빠졌습니다.

여민철(이하 여) : 이제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카페에서 이번 도전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 오토바이요? 앞으로 자전거는 타지 않으려고요(웃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도전을 마친 소감을 물었습니다.

 

Q. 미국 6,500km 횡단을 했어요. 이번 도전 어땠나요?

여 : 솔직하게 말하자면 처음에는 마냥 쉬울 줄 알았어요. 그냥 페달만 밟으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힘들기야 하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자전거 고장도 많았고, 너무 더웠어요. 하지만 서로 의지하며 페달을 밟았고 어느덧 도전에 성공하고 이렇게 형들과 인터뷰를 하게 되네요.

신 : 맞아요. 저 혼자 도전한게 아니라 셋이 함께했기에 도전에 성공할 수 있었어요. 정말 울고 싶고, 짜증도 났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있어요.

김 : 74일 동안 100km를 달려서 뉴욕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지도를 볼 때면 그 거리가 막막해 도저히 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루하루 꾸준하게 달리다보니 어느새 뉴욕이었어요. 자전거를 타며 지나가는 동안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파이팅'하라는 응원과 웜샤워*를 비롯해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더욱 뜻 깊은 여행이었습니다.

 

 

*웜샤워 : 자전거 여행자 커뮤니티. 호스트와 게스트가 되어 숙박과 식사를 제공 받을 수 있다.

 

 

도전이라는 미션 아래 혼자가 아닌 셋이 의지했고, 이들을 돕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도전을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진 속에서도 정말 많은 사람들과 함께했는데요.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Q. 여정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어요.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은 누군가요?

김 : 정말 다 기억에 남아요. 저희가 웜샤워를 총 9번을 했었고 9명의 도움을 받았어요. 이들 중 크리스라는 아저씨는 여행 초반에 인연을 맺었는데요.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뉴욕이라고 하니 자기 집이 근처니까 지나갈 때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줬어요. 2달의 시간이 지나 뉴욕에 도착할쯤 우리를 기억할까? 큰 기대없이 연락을 했는데 기분 좋게 우리를 맞이해줬어요. 궁금한게 많은지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신 : 성재 형이 생각나요. 형석이의 학교 선배였는데 저랑 민철이는 모르는 분이거든요. 그럼에도 정말 편하고 친근하게 대해줬어요. 성재 형은 직장을 다녔는데 새벽에 퇴근을 해도 아침밥까지 꼭 챙겨주고 잠을 자더라고요. 여행 중에 가장 오래 머문 집(4일)이었고 유일한 한국 사람이라 몸도 마음도 편했습니다.

여 : 사막을 지날 때 만났던 린다 아줌마!(린다 라는 이름이 나오자 2명이 동시에 '맞아 린다 아줌마가 최고였어'라고 이야기했다.) 숙박 장소에서 목표로 했던 도착지까지 약 80km가 되는 거리에 정말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때 자동차로 누군가 따라오며 계속 뭔가 이야기했는데 알고보니 우리에게 물을 주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물을 주고, 다음에는 과일을 주고 40km를 자동차로 함께 달리며 우리를 도와줬어요. 처음에는 '왜 우릴 도와주지?' 싶은 마음에 경계를 했었는데 나중에 엠보이(Amboy)에 유일한 건물인 주유소에 우리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며 텐트를 칠 수 있게 도와주는 모습을 보며 그 진심을 알 수 있었어요. 알고보니 예전에도 미국을 횡단하던 한국인을 도와줬더라고요. 린다 아줌마가 만들어 준 요리를 먹으며 쉴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분이였어요.

 

 

  

크리스와 함께 찍은 사진(왼쪽 사진), 린다 아줌마가 준비한 자리(가운데 사진), 성재 형과 찍은 사진(오른쪽)


 

"펑크, 통증,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다 아줌마를 이야기할 때도 3명이 크게 공감하는 분위기였는데,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펑크' 이야기를 할 때는 너나 할 것없이 고개를 젔는 모습이었습니다.

Q. 가장 힘든 순간으로 '타이어 펑크'를 꼽았어요.

여 : 뉴멕시코주쯤에서 타이어 펑크가 많이 났어요. 펑크가 나면 3명 모두가 멈춰서 고치고 가야 하는데 그날은 유독 20번이 넘게 펑크가 났어요.

김 : 그래도 펑크날 때마다 3명이 함께 도왔던게 좋았어요.

여 : 맞아요. 저는 막막한 상황에 힘들어했는데 정훈이 형이 옆에서 "이것마저 여행이야. 즐겨!" 라는 말에 제 관점이 달라졌어요. 생각과 마음가짐에 따라 힘듦마저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신 : 저는 솔직히 중간에 포기하려고 했어요. 형석이나 민철이에게 말은 하지 못했는데 무릎이 안좋았거든요. 진통제로도 해결이 되지 않아 LA에 도착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명에게 피해를 주는 거 같아 미안했거든요. 하지만 한국에서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텼어요. 죄송해서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3명 모두 포기하고 싶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진통제로도 지워지지 않는 통증 때문에, 매일 이어지는 100km가 넘는 이동 거리 때문에, 

'폭우', '더위', '천둥 번개' 이들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으로 '포기'를 떠올렸지만 이들은 그저 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투병 중인 아이들"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Q.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했어요. 그리고 성공했고요.

여 : 여행하면서 우리끼리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메이크어위시라는 이름을 걸고 아이들을 위해 달리는데 책임감을 가지자고요.

김 : 도전 중에도 한국 소식을 계속 체크했어요. 우리의 도전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저희끼리 미국 횡단을 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거예요. 후원자분들의 참여가 저희에게는 도전의 의미를 주고, 아이들에게는 희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신 : 저희를 응원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도전을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감사함을 담아 박수를 드리고 싶어요.

 

 

 

인터뷰를 이어갈수록 3명의 친구들에게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도전 전 인터뷰에서는 마냥 신이나고 에너지 넘치던 20대의 모습이었는데 도전을 마친 이들을 보며 '성장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전을 앞두고 찍은 사진(좌) 도전을 마치고 찍은 사진(우)

​ 

Q. 이번 도전을 앞두고 각자 목표가 있었어요. 여러분에게 도전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신 : 저는 제 인생의 길을 찾았습니다. 출발 전 인터뷰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고 했었는데 저는 이상적인 삶을 살고자 마음 먹었습니다. 그랜드캐년에 도착해서 그 펼쳐진 장관을 눈으로 보며 앞으로 이런 순간들을 더 많이 경험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김 :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었어요. 도전 전에는 무모하다고 만류하던 친척들도 이번 여정을 통해 응원과 함께 대견하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여 : 크게 2가지를 느꼈어요. 라이딩 중에 마주한 천둥과 번개는 어렸을 때부터 무서워했던 것들이라 너무 무섭더라고요. 극복하는게 쉽지 않았어요. 이런 순간들을 통해 스스로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어요.

다른 하나는 투병 중인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생겼습니다. 달리면서 많은 생각과 상황을 떠올렸어요. 특히 아이들 앞에 서서 제 이야기를 전하는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저도 재생불량성빈혈로 투병도 했고 또 나았잖아요. 힘든 순간 니체의 글귀로 영감을 받고 삶이 바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어요.

투병 생활은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도 없고, 학교도 다닐 수 없는 수 많은 제약이 있을 거예요. 그 제약에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지 말고 강해지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투병 사실을 숨기지 말고 극복했으면 해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고통을 극복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말이죠.

계속 시련과 싸우다 보면 분명 성장할 거라 믿습니다.

 

'투병 중인 아이들'을 위한 도전은 청년들 개인에게도 각자 큰 의미를 주었습니다. 극한 상황을 경험하고 싸워 이겼낸 이들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Q. 도전했고 경험했고 성공했어요. 도전을 앞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신 : '성공을 상상하며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도착할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저는 라이딩 내내 뉴욕에 서 있는 제 모습을 상상했어요.

김 :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일단 하라고 미루지 말고 하다 보면 이룰 거라고요.

여 : 저는 목표를 향한 성공 보다 그 과정에서의 즐거움을 찾았으면 해요. 목표만을 향해 달리다 보니 힘들고 성공만을 생각하다 보니 과정을 즐기지 못하는 거 같아요.

 

 

도전을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들은 벌써 새로운 도전을 꿈꿉니다. 형석 군은 피트니스 대회를, 정훈 군은 극지 마라톤을, 민철 군은 스카이 다이빙을 준비한다고 하네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의기투합하는 청년들을 보며 투병 중인 환아들에게 '할 수 있다'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시작했던 도전이 이들 스스로에게도 '할 수 있다' 라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까지 이어진 이들의 도전은 74일이라는 시간도 6,500km라는 거리로도 정의될 수 없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이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더 잘 전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그만큼 대단한 도전을 한 이들이고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들의 메시지가 지금 투병 중인 환아와 가족에게 전달되길 소원합니다.  

 

 



 
 

 

 

​ 






글: 대외협력팀 한아름 과장

사진: 대외협력팀 김신현 간사,여민철 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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